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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 이주자,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세우라

[유크객원칼럼]  이성춘 목사, 프랑크푸르트국제교회

종교개혁 500주년 이후 :  어떤 변화를 가져야 할까?

멀리 있는 대형교회를 찾아갔고 익명성을 지닌 채 살아왔지만, 이제는 걸어서 동네의 교회를 찾아가고, 지역과 직장에서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종교개혁 500년 이후 시대가 되어, 작은 마을 공동체, 작은 교회들이 살아 활동함으로 새로운 모습, 새로운 소망이 시작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독일에서 진행해온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독일교회협의회의 총회장인 베드포드-스트로흠은 지난 9월 29일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종교개혁 500주년이 독일 국가중심의 행사나 반카톨릭주의로 메몰되지 않고, 교회연합을 이루었으며 함께 축하되었다고 평가했다. 상호 신뢰와 영적 공동체성이 발전되었고, 신학적인 차이를 극복하고자 대화와 인내를 가졌으며, 구체적인 진보가 지속적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쾰른의 추기경인 라이너 마리아 뵐키는, 헤르더 코레스폰던쯔라는 신학전문지에서 “사회윤리학의 관점, 모든 종류의 결혼, 낙태, 안락사, 이혼의 권리 등의 영역에서, 신구교 사이에 더 많은 간격과 차이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복음에서 사회의 현장으로 나아갈 때, 개신교가 더 성경적인 가르침을 이탈해 가며, 시대정신에 발맞추어 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 종교개혁 행사들을 지켜보면서, 한스 큉은 “교회의 분리를 실제로 종결시키지 않으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축하하는 것은 새로운 죄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신구교 사이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4가지, “마틴 루터의 복권, 종교개혁 때의 모든 출교선언의 폐지. 개신교와 성공회의 성직 인정, 상호적인 성만찬 참여 허용”을 카톨릭교회에 요청하면서, 구체적인 연합운동의 전진을 촉구했다. 이 4가지 요구가 여전히 미완성과제 인지, 아님 당연한 현실인지가 남겨진 것이다.

카톨릭의 유명한 신학과 심리학교수인 만프레드 뤼쯔 (쾰른) 뤼쯔는 면제부 판매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한 1517년의 마틴 루터를 자신이 유모스럽게 재현하면서, 9+5라는 카톨릭 조항을 비텐베르그에서 개신교 시교회의 정문에 못을 박아 붙였다.

9+5의 선언은, “1. 카니발 축제를 개신교 모든 영역에서 실시하라 2. 개신교의 여목사와 여 총회장을 남성화시키지말고 그들을 존중하여 남성의복인 목사까운을 입히지 말라. 3. 지적이며 유머스럽지 못한 일벌레인 목사, 아내와 자녀와 어울리지못한 가장인 목사를 독신으로 만들어라. 4. 개신교적인 순례행사의 도입하라. 5. 술집과 화려한 식당을 교회 바깥이 아닌 바로코 형식의 웅장한 교회건물내에 세우기를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 광대놀음이 유모 혹은 진실게임이 될지, 또는 개신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얼굴의 생채기가 될지, 거룩한 그리스도의 흔적이 될지는 결국 개신교와 목회자들의 몫이 되었다.
500주년이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지만, 독일 전국민을 향한 영적인 영향력이 미미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파급효과가 크지 않았다. 2042명이 대상으로 한 기독교 언론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18-24세의 독일 젊은이들 중에서 50%만이, 65세 이상에서는 87%가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를 인식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10% 만이 500주년의 기념 행사에 참여하였고, 단지 10%만이 이 행사들을 통해서 영적인 영향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이 10%만이라도,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통치로 다리를 놓아주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컨넥터가 되고, 입소문으로 전염시킬만한 지식(믿음)과 사회적인 기술(성령의 역사)을 가진 메이븐이 되고, 세상을 뒤 흔드는 복음의 세일즈맨이 된다면, 영적 대각성을 이루고 사회를 변화시킬 문화적, 기독교적 티핑포인트를 이룰 것이다.

랄프 윈터는, “종교개혁을 단순히 ‘믿음에 의한 칭의’ 로 대변되는 루터 신학의 등장이나 칭의에 대한 신학적 논쟁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타문화적 안목을 갖고 종교개혁을 새로운 문화정립현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 – 로마 카톨릭의 지중해 문화가 개신교의 게르만 문화로 이어져 온 것이다. 그 동안 이 개신교는 유럽-미국 문화적 옷을 입고 서구 기독교로, 기독교 왕국 (Christendom) 으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제는 남반부 중심의 세계 기독교 (Global Christianity) 시대의 옷을 입게 되었고, 어느 한 지역과 그 문화를 중심으로 삼지 않고, 주변과 이주에 촛점을 맞춘 성육신적인 교회. 선교적 교회의 시대가 된 것이다.

티스 군드라흐 (하노버)는 종교개혁은 “세계의 시민”(Weltbürgerin (Martin Junge)) 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세계를 순회하고 다시 독일 본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개혁은 세계의 시민이 되었고, 세계시민은 오늘의 관점에서는 이주민들이다. 이주민은 전쟁, 재해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게되는 사회의 요인이 되었다. 모슬렘의 이주도 주목을 받지만,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주하고 있다. 유럽이나 세계의 대도시를 향한 이민자 가운데 기독교인이 아주 많고 그들 덕분에 유럽에서 기독교가 부흥하리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필립 제킨슨은 이민자 교회가 작은 의미에서 서유럽 기독교의 미래를 상징할 것으로 보았다. 나이지리아, 브라질, 중국, 필리핀, 한국의 디아스포라교회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존 스토트는 1차 종교개혁은 성경을 성직자의 손에서 평신도들의 손에 올려준 것이라면, 2차 종교개혁은 사역을 성직자의 손에서 평신도의 손에 들려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레슬리 뉴비긴은, 교회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통로는 교회 기구가 발표하는 공식 성명이 아니라, 교인들이 일반 직장에서 수행하는 일상적인 업무라고 지적했다.

경제적인 혜택과 자녀교육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전문인들의 손에 성경과 사역을 담겨주어야한다. 이제는 교회(예배당)가 중심이된 사역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주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전시켜가는 사람들 중심이 된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종교개혁의 의미는 성도와 그들의 이주를 발견하고 그들을 개혁적, 복음적 신앙으로 무장한 세계시민으로 삼아야 하는데 있다. 그래서 95개 조항 같은 새로운 신학, 신앙 선언문을 작성하는 것만이 아닌, 95명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워주어야 한다. 교회 역사상 종교개혁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 이후, 경건주의 운동, 영적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영적부흥과 사회의 변혁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종교개혁 500주년 이후도 역시 이런 경건주의 회복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신학, 교리, 복음의 실천과 섬김에서도 연합하는 모습이 되어야한다.

현대인들은 소속감이 없이, 홀로, 정신적인 노숙자의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홀로 사는 것 보다는 공동거주하는 코하우징의 시대가 열려지고 있다. 그 동안 이웃과 단절되어 살아왔지만, 걸어가서 이웃을 만나기를 원한다. 가상세계에서의 활동, 온라인 서명활동과 같은 클릭액티비즘 (Click Activism)의 활동에서 지역과 이웃속에서의 구체적인 활동으로 전환되어가야 한다. 멀리 있는 대형교회를 찾아갔고 익명성을 지닌 채 살아왔지만, 이제는 걸어서 동네의 교회를 찾아가고, 지역과 직장에서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종교개혁 500년 이후 시대가 되어, 작은 마을 공동체, 작은 교회들이 살아 활동함으로 새로운 모습, 새로운 소망이 시작될 것이다.

필자:이성춘목사<paulusmissi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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